WORLD TOPIC | NEW YORK Anri Sala Answer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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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오래된 슬픔> Super 16mm film transferred to single-channel HD video, stereo sound, color; 12분57초 2005 동독 이주자들이 모여 살던 서베를린의 한 고층 아파트 꼭대기에 매달려 연주하는 프리재즈 색서폰 연주자 자밀 문닥의 얼굴이 보인다. ⓒ Anri Sala 아래 <대답해줘> 2008 Photo: Maris Hutchinson/ EPW Studio

알바니아 태생의 안리 살라(Anri Sala, 1974~). 이념의 충돌로 역사가 소용돌이 치던 유럽에서 성장기를 거친 작가는 자신이 겪은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작업하고 있다. 그의 작업을 모은 전시 <Answer me>(2.3~4.10)가 현재 뉴욕 뉴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다. 이 전시에서 안리 살라의 영상설치 작업 12점이 출품됐고 다양한 퍼포먼스가 라이브로 행해져 입체적인 전시였다는 평가다. ‘지역적 노마드’, ‘사상적 노마드’를 자처하는 그의 면모를 전시장을 거닐며 살펴보자.

에트랑제가 보는 세상

서상숙 미술사

안리 살라는 1974년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에서 태어났다. 당시 알바니아는 같은 공산주의 국가들과도 교류가 끓긴 고립된 나라였고 그의 어머니는 청소년들을 공산주의자로 무장시키기 위한 이념교육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가 15세 때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으며 17세가 되던 1991년, 알바니아 역시 민주화를 택했다. 알바니아의 국립미술대학으로 진학해 회화를 전공하던 살라는 22세 때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다.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접한 비디오와 필름, 다큐멘터리라는 새로운 미술매체와 장르는 “충격”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현재 베를린에 살며 작업하는 40대의 살라는 세계가 주목하는 중진작가로 부상했다. 이렇듯 유아기, 청소년기 그리고 청년기의 일부를 폐쇄된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보낸 작가가 21세기의 현대미술, 그리고 예술을 하는 방법은 어떤 것일까.
뉴욕 뉴뮤지엄의 2, 3, 4층 전관에서는 <안리 살라: 대답해(Anri Sala: Answer Me)전>이 지난 2월 3일 개막해 4월 10일까지 계속되며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유럽에서는 잘 알려져 있으나 미국에서는 다소 생소한 살라의 작품을 포괄적으로 한자리에 모은 첫 미술관 전시다. 12점의 비디오 설치작품과 더불어 조각과 드로잉도 함께 전시되고 있다.
이 전시에서 살라는 이 같은 물음에 뛰어난 미술적 해법을 제시한다. 사실, 어쩌면 진실까지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비디오와 필름 매체의 다큐멘터리적 특성, 그리고 음악(소리)을 통해 그 특성을 최대한 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언어를 믿지 않는다”는 살라의 비디오작업은 ‘사운드 인스톨레이션’으로 불린다. 음악은 스크린의 이미지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표현매체이며 전시 및 촬영장소는 물론 인물 선정까지 표현의 수단으로 이용된다는 점을 고려한 총체적인 설치작업으로 ‘심포닉 인스톨레이션(Symphonic Installation)’이라고도 한다. <라벨 라벨(Ravel Ravel)>(2013)은 두개의 화면이 상하로 놓여 있고 이 두 개의 화면에는 각각 피아노 건반과 그 피아노를 치고 있는 손이 클로즈업되어 상영된다.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있음이 분명한 이 피아니스트는 한 손만으로 피아노를 치고 있다. 그 한 손이 왼손이라는 것은 다리 위에 놓여 있는 오른손이 화면에 떠오르면서 밝혀진다. 중간중간 휴지기가 오면 피아노를 치던 왼손은 오른손 위에 놓인다. 마치 피아노를 칠 수 없는 오른손을 가만히 위로하는 것처럼….
이 음악은 모리스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D장조>로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른팔을 잃은 오스트리아의 피아니스트 폴 비트겐슈타인(1887~1961)이 커미션하여 작곡된 작품이다. 철학자인 루드비그 비트겐슈타인의 형이기도 한 폴은 전쟁에서 돌아와 피아니스트로 활동하였으나 결국 나치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여 왼손의 피아니스트로 활동했다. 살라는 이 곡이 서로 어긋나도록 템포를 변형하여 두 명의 피아니스트가 이미 녹음된 오케스트라를 들으며 연주하도록 하여 이 작품을 만들었다.
<언라벨(Unravel)>(2013)은 디스크 재키가 음반을 돌리며 이 템포를 원래대로 돌려 놓으려고 하는 모습과 그 소리를 담은 작품이다. 뉴뮤지엄은 이 작품의 전시를 위해 3층 전시장을 막아 천장과 벽에 방음처리를 하여 문이 없는 극장을 만들었는데 16개의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의 조화가 음악회 못지않게 뛰어나다.
살라는 2012년 파리 퐁피두센터 전시, 특히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라벨 라벨 언라벨>을 발표하면서 국제적으로 그 인지도를 높혔다. 당시 프랑스를 대표했던 살라는 프랑스관이 아닌 보수와 파괴, 재건축 등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독일관을 전시장으로 선택함으로써 전시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그리고 독일 작품은 프랑스관에 전시되었다. 유럽에서 숙적 관계에 있던 프랑스와 독일의 역사적인 상처, 그리고 무엇보다 독일 나치정권에 의해 쫓겨난 피아니스트 폴 비트겐슈타인을 독일로 다시 불러들인다는 상징적 제스처는 사이트 스페시픽 인스톨레이션 장르의 특성을 기가 막히게 살렸다는 점에서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이처럼 어긋나는 역사, 그 역사가 남긴 상처들, 그리고 그 역사에 갇힌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기억하며 그것을 회복하려는 노력은 살라의 전 작품에 흐르는 주제이다.
<현재의 순간(The Present Moment)>(2014)에 쓰인 음악, <정화된 밤>을 작곡한 아르놀트 쇤베르크(1874~1951)는 오스트리아인으로 1933년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유대인이다. 현대음악의 특징인 무조음악을 창시하고 12음계를 정립한 위대한 쇤베르크는 나치하에서 ‘타락한(degenerated)’ 예술가의 명단에 올랐었다, 무명 작곡가로서 유명한 작곡가의 딸을 사랑하던 25세의 쇤베르크가 독일의 시인 리하르트 데멜이 쓴 정열적인 연애시 <정화된 밤(Verklarte Nacht)>에서 영감을 얻어 같은 제목의 낭만적인 현악 6중주곡을 작곡했다. 살라는 이 곡을 ‘B?플랫’과 ‘D’ 등 한 음만을 연주하도록 변형하고 그 연주자들의 모습을 필름에 담았다. 천장에 설치된 19개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더불어 두 개의 화면에는 연주자들의 손가락, 팔, 목, 얼굴 등을 클로즈업한 장면이 보인다. 연주를 하는 동안 오랜 연습으로 훈련된 근육의 움직임, 그리고 그들이 아는 악보가 아닌 어긋난 음악을 연주하려는 심각한 표정이 함께 보인다. 이 작품은 나치가 ‘위대한 미술’이라고 부른 작품들을 전시하기 위해 나치건축의 원칙에 따라 뮌헨에 지어진 건물(Haus der Kunst)에서 찍은 것이다.
비디오나 필름을 찍는 ‘장소’는 살라에게 매우 중요한 작품 구성의 요건이다.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해 장소를 정하고 음악을 선정한다.
그의 초기작 중 하나인 <색깔을 달라(Dammi I Colori)>(2003)는 황폐한 그의 고향, 티라나의 희망을 말하는 작품이다. 작가의 친구이며 미술가로서 (파리에서 살라와 룸메이트였다) 티라나 시장에 당선됨으로써 정치인으로 변신한 에디 라마(Edi Rama)와 택시를 타고 시내를 돌며 직접 찍은 비디오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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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는 비디오사운드 인스털레이션과 함께 드로잉 작품들도 선보였다. Photo: Maris Hutchinson/EPW Studio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각
현재 알바니아의 수상인 라마는 당시 낡은 티라나의 빌딩을 화려한 색으로 채색함으로써 주민들에게 유토피아적 희망을 주고 싶다는 계획을 역설한다. 그는 “동네 술집에서 색깔을 논의하는 곳은 전 세계에서 티라나 한 곳뿐일 것”이라며 “티라나 주민들에게 색깔은 옷이 아니라 (몸속의) 내장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색깔을 달라’는 제목은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의 남자 주인공의 아리아에서 따온 것이다. 이밖에 사라예보에서 찍은<붉은색이 없이 산 1395일(1395 Days without Red)>(2011), 나치 시대의 아파트를 부순 잔재들을 쌓아 생긴 언덕 위에 지어졌으며 한때 동독을 감시는 장소로 쓰인 ‘악마의 산(Teufelsberg)’에서 제작한 <대답해(Answer Me)>(2008), 동독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모여 살던 아파트단지에서 찍었으며 그 단지를 부르던 이름을 딴 <오래된 슬픔(Long Sorrow)>(2005) 등 살라의 작품은 모두 아픈 역사의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그의 첫 작품인 <인터비스타(Intervista-Finding the Words)>(1998)는 그의 집 다락에서 찾아낸 필름이었다. 1970년대 후반 그의 어머니가 알바니아의 노동당회의에서 연설하는 장면으로 소리가 나지 않아 농아학교 학생들에게 입술을 읽어달라고 부탁해 그 연설 내용을 복원하였다. 어린 시절 바이올린을 오랫동안 배운 안리 살라는 클래식 음악뿐만 아니라 재즈 등 다른 장르의 음악도 폭넓게 이용하고 있다. 현재 뉴뮤지엄 전시에서도 색서폰 연주자인 안드레 비다(Andre Vida)가 전시기간 동안 비디오 <오래된 슬픔>의 주변을 돌며 라이브 연주로 비디오 속에서 아파트 꼭대기의 창문에 몸을 내민 채 연주하는 재즈음악가 제밀 문닥과 듀엣을 이루는 퍼포먼스 <3-2-1>(2011)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 파리와 베를린, 그리고 티라나를 오가며 작업하는 살라는 지역적인 노마드일 뿐만 아니라 공산권에서 태어나고 자라 서구에서 살고 있으며 유럽에서는 보기 드문, 이슬람 국가인 알바니아에 가족을 둔 사상적인 노마드이기도 하다.
전시장에서 만난 큐레이터 막시밀리아노 지오니(뉴뮤지엄 아티스틱 디렉터)는 “살라는 알바니아의 전통적인 화가 교육을 받은 작가로 음악을 사운드 효과로 쓰는 비디오작업에서도 그런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면서 “인물들 개인의 역사를 보여주는 손, 얼굴, 머리카락, 근육 등을 클로즈업하는 디테일이 음악과 어우러져 작가가 인간에 대해 가지고 있는 따뜻한 시각을 느낄 수 있다”고 밝힌다.
그의 작업은 예술이 사회에 참여할 때 작품이 어떻게 예술로서의 기능을 잃지 않고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가, 더 나아가 어떻게 자신의 운명과 그 운명이 가르쳐준 사회, 정치, 역사적 메시지를 예술로서 승화시킬 수 있는지를 훌륭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