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SHIN’S DESIGN ESSAY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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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즐거운 나의 집>(2014.12.12~2.15) 전시광경

즐겁고 행복한 나의 집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옛날에는 일단 아파트 한 채 사두면 곧바로 집값이 올라 그 집을 팔고 더 비싼 집으로 옮겨가곤 했다. 그런 부동산 거품 시대가 지난 지금 아파트 소유는 더 이상 재테크의 수단이 아니다. 은행 이자 내는 만큼 집값이 오르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요즘에는 집을 사는 게 손해라는 말도 있다. 집을 팔려는 사람이 많아졌다.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집은 그저 부의 가치로만 측정되는 거 같다. 집 사기가 옛날보다 쉬워져도, 집을 소유한 사람이 많아져도, 집값이 옛날보다 떨어져도 여전히 한국인들은 2년에 한 번씩 이사를 다닌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도 며칠이 멀다하고 이사 트럭과 사다리차가 와서 짐을 내리고 싣기를 반복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난민 아닌 난민이다.
아르코미술관에서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전시를 보았다. 첫 전시장은 거실이다. 테이블 위에 잡동사니들이 눈에 들어왔다. 크리스털 잔과 크리스털 재떨이, 섹시하게 생긴 장식용 용기들, 각종 트로피, 액자에 끼워진 상장, 봉황을 새겨 한껏 권위를 부린 유리 재질의 감사패, 가짜 앤틱 전화기와 이국적인 무늬가 수놓인 전화기 받침대, 모조 고려청자, 중국 여행에서 가져온 듯한 도자기, 사람 모양 인삼이 들어있는 병, 바둑판과 바둑돌, 야구공, 에펠탑 기념품, 지구본, 미니어처 범선, 위스키 로얄살루트 병, 타자기, 이제는 볼 수 없는 검정색의 다이얼식 전화기, 손잡이가 달린 카세트 겸 라디오, 레이스 달린 천 커버를 씌운 티슈통… 우리나라 어느 집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이다. 하나하나 보면 결코 미술관에 들어올 만한 그런 고상하고 수준 높은 것들이 아니다.
집주인은 이런 것들을 거실 테이블에 올려놓고 장식장에 넣어두고 벽에 걸어둔다.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둘씩 가짓수가 늘어난다. 이것들은 집주인이 이룬 사회적 성취의 증거이고 취향과 기호의 표현이며 여행지에서 가져온 기념품의 과시다. 집이란 이런 잡동사니들의 집합소이고, 한 가족의 역사와 기억을 진열한 전시장이다. 어느 것 하나 사연 없는 것이 없을 것이다. 가족이 겪는 경험과 시간의 흐름으로 한국의 천편일률적인 아파트도 그 주인에 따라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주 특별하고 소중한 집이 된다.
최근에 출간된 송미경의 단편 동화 <아빠의 집으로>를 읽었다. 고아원에서 살던 한 소년이 친부모를 만나 진짜 자기 집으로 향한다. 두 살 때 친부모가 아이를 잃어버려서 소년은 부모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그는 앵벌이, 그 뒤 낡은 고아원에 수용된 고아로 갖은 고생을 하며 자랐다. 그는 늘 깨끗한 집, 맛있는 음식, 친절한 가족을 꿈꿨다. 그리고 그 꿈이 정말로 실현되었다. 그러나 꿈이 실현되자 소년은 진짜 친부모가 어색하고 불편하기만 하다. 깨끗한 집 역시 더러운 자신을 더욱 초라하고 주눅 들게 만든다. 그가 꿈꾸던 집은 실제로는 그를 위축시키고 긴장시키기만 한다. 소년은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딱 하루, 오늘 하룻밤이라도 천우와 함께 지내던 낡고 비좁은 방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휘청거리던 이층침대와 낡은 누비이불 틈으로 몸을 밀어넣고 싶다. 나는 진짜 엄마와 아빠가 살고 있는 이 깨끗하고 밝은 집을 벗어나 내 마음대로 발가락을 까딱거리거나 다리를 떨며, 천우와 동전 따먹기를 하다가 잠들고 싶다. 오늘 하룻밤만이라도.” 이 소년의 간절한 마음은 집이란 개념을 다시 생각게 한다. 집이란 자기와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그곳은 익숙한 사물들로 채워져 있으며 그것마다 사연이 있다.
이사하는 날, 모든 짐을 빼내 텅 비어버린 집 안을 볼 때 밀려오는 이상한 기분, 섭섭한 마음을 누구나 경험할 것이다. 나에게 익숙한 것들이 사라지는 순간 집의 가장 중요한 기능, 즉 따뜻함도 공중으로 사라진다. 건축과 디자인, 인테리어 책과 잡지는 순수한 아름다움을 눈부시게 보여준다. 위대한 건축가들이 지은 명성 높은 집은 결국 사람 사는 공간이 아닌 그 자체가 미술관이 된다. 우리의 현실 속에서 집은 늘 부동산의 가치로 평가되며 그것으로 매매와 이사가 반복된다. 전시 <즐거운 나의 집>과 동화 <아빠의 집으로>는 우리에게 집의 가치에 대해 다시 묻게 만든다. 집은 아름다움이나 부동산이 아니라 가족과, 또는 익숙한 사람들과 함께 한 시간과 기억으로 가치가 높아진다. 집은 ‘내 집’이어야 하는 것이다. ●